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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 다큐 영화·김수환 추기경 연극, 조용한 인기몰이

신앙인의 표상이자 한국 사회의 정신적 지주였던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의 삶을 조명한 연극과 영화가 한국에서 조용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지난 12일 개봉된 법정 스님 추모 다큐멘터리 영화 '법정스님의 의자'는 오락 영화의 홍수 속에서 개봉 일주일 만에 2730여 명의 관객을 모았다. 10개 개봉관에서 거둔 성적이다. 22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좌석 점유율은 8.6%로 홍콩의 코믹에로 영화 '옥보단'을 다시 만든 '옥보단 3D'(7.8%) 역시 리메이크작인 '천녀유혼'(8.3%) 등 같은 날 개봉된 다른 영화들보다 개봉관은 훨씬 적지만 좌석 점유율은 제일 높았다. 지난 19일부터는 서울의 씨네코드 선재 지방의 예술 전용관 등에서 추가로 개봉됐다. 배급사 '키노아이'의 박주원 대리는 23일 "스님의 '무소유 삶'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영화"라면서 "웬만한 영화는 여성 관객의 비율이 높은데 이 영화는 남성 관객의 예매 비율이 여성보다 2배 이상 높다"고 말했다. 박 대리는 "관객의 나이대도 30-40대 직장인의 비율이 높다"면서 "물질이나 성공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압박을 받는 남성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치유와 위안을 얻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수환 추기경의 삶을 조명한 연극 '바보 추기경'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올 1월 24일 서울 가톨릭 청년회관 CY씨어터 무대에 오른 '바보 추기경'의 서울 공연은 5월 30일까지 계속되며 서울 공연에 이어 다음 달부터는 지방 순회공연에 들어간다. 미국 공연은 현지 한인 성당들의 초청으로 성사됐으며 9월 10~11일 17~18일에는 LA에서 24~25일에는 뉴욕에서 공연된다. 가톨릭 공연 제작사인 '가톨릭문화기획 IMD'의 최진이 기획팀장은 "특히 초.중.고등학생 관객이 많아 깜짝 놀랐다. 주말에는 학생들 단체 관람이 전체 관객의 70%에 이를 정도를 정도"라면서 "지방 공연과 해외 공연이 끝나면 올가을 서울에서 재공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바보 추기경'은 김 추기경이 가난한 집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신부가 된 후 추기경에 이르기까지 겪은 의심과 고뇌 기도의 과정을 그려낸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이희연 홍보팀장은 "김 추기경의 인간적인 면을 많이 엿볼 수 있어서 연극 공연 중에 우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2011-05-24

김수환 추기경 다큐멘터리 영화…'바보야' 한국·LA서 동시 개봉

김수환 추기경의 일생을 담은 다큐멘터리 '바보야'가 오는 22일(금) CGV 시네마스에서 상영된다. 제작사는 아프리카 수단에서 선교활동을 했던 고 이태석 신부의 생애를 담은 '울지마 톤즈'를 제작했던 KBS미디어. CGV 시네마스의 김 영 담당자는 "'울지마 톤즈'는 한국 관람객이 15만 명 정도 된 시점에서 개봉했는데 '바보야'는 한국과 LA 동시 개봉된다"고 말했다. '바보야'는 오는 5월 12일까지 3주간 상영 예정이다. 지난 18일(월) 시사회에서 한인들은 "한국 내 격동의 역사 한 가운데를 관통하며 일생을 바친 한 성직자의 삶으로 또 다른 감동"이었다고 말했다. 올드 타이머인 고 마리아(62)씨는 "이렇게 큰 화면에서 김 추기경님을 대하니 새삼 감회가 깊다"며 "한 인간으로서 사제라는 길을 한국의 거친 풍파 속에서 어떻게 견디어 냈는지가 보여지면서 나도 모르게 자꾸 눈물이 흘렀다"며 한국의 역사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찡했다고 말했다. CGV 시네마스의 김 영 담당자는 "이미 한국에서는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다"며 "LA에서도 또 다른 감동을 몰고 올 것"이라 기대했다. 상영시간은 22~27일은 오전 10시 15분 오후 12.2.4.6.8.10시. 28일~5월 12일 상영시간은 추후 공지 예정. ▶문의: (310)557-3050 www. cgvcinemas.com 김인순 기자

2011-04-19

소외 계층의 '다정한 이웃', 고 김수환 추기경을 추억하며…

고 김수환 추기경의 일생을 담은 다큐멘터리 '바보야'(제작 KBS미디어/ 포춘미디어)가 부활대축일을 앞둔 오는 21일(목) 한국의 영화관에서 개봉된다. 김수환 추기경 선종 2주기를 맞아 기획된 '바보야'는 순교자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사제가 되어 소외 계층의 '다정한 이웃'으로 살아 온 종교 지도자로서의 활동을 담았다. 동시에 한국 역사의 한 가운데에서 산증인으로서 '명동성당'을 살아있는 사회 정의 현장으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큰 역할을 한 모습들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특히 김 추기경의 인터뷰 장면과 마지막 모습은 그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큰 감동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국민배우 안성기(사도요한)씨가 내레이션을 맡아 눈길을 끌고 있다. 안씨는 '북극의 눈물'을 비롯한 다수의 다큐멘터리에서 내레이터로 참여하여 이미 관객들의 마음을 울린 바 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면서 동시에 김 추기경의 고교 후배이기도 한 안씨는 제작진의 제의를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받아 들였고 "뜻깊은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하게 되어 영광"이란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녹음 중에 간간히 김 추기경에 대한 기억과 또 그리움을 토로해 함께 일한 제작진의 마음까지 감동케 했다는 후문이다. 이번 작품은 지난해 '울지마 톤즈'처럼 최근들어 한국 극장가에 불고 있는 웰메이드 종교 다큐멘터리의 열기를 그대로 이어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종교 다큐멘터리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이유에 대해 장르의 제한적인 한계를 넘어 현세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감성을 울리는 '인간 공통의 메시지'가 전해지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영화 관계자는 "이 세상 무엇보다 아름답게 빛났던 김수환 추기경의 삶은 다시금 우리에게 진정한 의미의 사랑을 일깨워 줄 것"이라며 "김 추기경의 삶을 전하는 안성기씨의 가슴 절절한 내레이션은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고 전했다. 영화 수익금 일부는 '나눔의 삶'을 살고자 애썼던 김추기경의 뜻을 따라 어려움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지게 된다. 김인순 기자

2011-04-12

[김 추기경 추모사] '좁은 길로 가신 큰 분'

오늘 지금 이 시간 성바실 성당에는 천여개의 화환이 놓여 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을 추모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화환으로 보입니다. 꽃들이 우는 것 같은데 희망의 향기가 묻어 나오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사람'은 김수환 추기경님처럼 살 수 있구나 하는 희망을 우리에게 심어주시고 가셨습니다. 우리가 살고 싶고 소망하는 삶을 바로 사셨습니다. '좁은 길'을 스스로 택하신 걸 보면서 살아 움직이는 '말씀'이라고 느낄 때가 자주 있었습니다. 좁은 길을 늘 걸어가신 큰 분이셨습니다. 언론사를 세워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끊임없이 듣고 심지어 교황제도에 대한 비판적인 시민들의 시각을 신문에 가감없이 실었던 김 추기경님은 큰 사람이셨습니다. 김 추기경님은 많은 사람의 걱정에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보는지 알아야 고칠 것은 고치고 바로잡을 것은 바로잡지 않겠습니까." 삶을 얕게 보지 않는 '깊은 길' 교황청에서 지적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는 '좁은 길' 하느님만을 경외하는 '높은 길'을 인자함과 온유한 모습으로 걸어오셨습니다. 추모하면서 기립니다. 미사 마침 예식에서 3번째 십자가 표시로 강복하심은 북녘 형제.자매를 생각하시기에 존경합니다. 1980년 군종 신부님을 통해서 광주 민중항쟁 지역에 급하게 쓴 편지와 구속자 영치금을 보내시면서 광주를 아파하시면서 위로하셨음을 기억합니다. 삶이란 무엇인지 우리가 알아듣게 설명하시지 못하고 고민 고민하시다가 기차에서 '삶은 계란' 소리를 들으시고 삶은 계란이라고 하신 것은 늘 우리를 품고 사셨기에 유머로 화답하실 수 있었던 것 입니다. '재산을 모두 교구에 헌납한다'라는 유언장과 함께 무언의 유언장을 우리에게 남기셨습니다. 무언의 유언장을 한 장씩 김 추기경님에게서 받은 마음으로 우리는 모두 이 추모미사에 앉아 있습니다. 우리가 할 바에는 게으르면서도 추기경님에게만 기대고 더 바라기만 하였는지 그 빈자리가 휑합니다. 이럴 수록 더 빈 마음으로 우리가 할 바를 실천하고자 여기 모였습니다. 김 추기경님을 닮기 원해 지극히 작은 자를 사랑하는 이태석 신부를 위해서 한 달 전 미국에서 아프리카 수단에 희망을 보내는 후원회를 창립하였는데 그 일을 꾸준히 하겠습니다. 한인 종교계는 물론 미국내의 종교계와의 종교간 소통을 위해 보다 더 많은 시간을 내겠습니다. 늘 김 추기경님처럼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렵니다. 많은 약속보다는 한 두 가지라도 실천함으로써 김수환 추기경님을 이 땅에 살아가면서 하루하루의 삶 속에 기리는 희망을 품습니다. 강원용 목사님을 만나시겠네요. 이렇게 한 번 불러도 되지요. '혜화동 할아버지 김수환 스테파노님'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19일 열린 성 바실 성당 합동 추모미사의 추모사 전문. 〈사진 신현식 기자>

2009-02-20

[기자 칼럼] '낙타' 를 닮은 김 추기경

포브스지가 발표했던 한 통계에 따르면 사망한지 30년도 넘은 엘비스 프레슬리가 2007년 한 해동안 벌어들인 수익은 4900만 달러였다고 한다. 비틀즈의 멤버였던 존 레논이나 만화 스누피의 작가로 유명했던 찰스 슐츠도 사후 수십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연간 2000~3500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단다. 대단한 힘이 아닐 수 없다. 진정한 '수퍼스타'의 위력이라고나 할까. 세상을 떠나서도 대중에게 끝없는 사랑을 받으며 그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위대한 일이다. 물론 금전적 수익만으로 그 사람의 영향력과 위대함을 평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말이다. 여기 또 한 명의 수퍼스타가 있다. 지난 월요일 선종하신 고 김수환 추기경. 평생을 낮고 가난하게 사셨던 그 분 이야기를 몇 천만 달러 '돈' 운운하며 시작했다는 것이 퍽 불경스럽다. 하지만 자신의 삶과 죽음을 통해 세상 그 무엇보다 값진 많은 것을 남겨신 그 분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수퍼스타가 아니었을까 싶다. 한국시간으로 20일 장례 미사가 거행될 때까지 그 분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기 위해 명동 성당을 찾았던 인파가 총 38만7420여명. 5~6시간을 추위 속에 떨며 기다려야 했지만 새치기와 짜증 한 번 없이 경건하고도 평화로운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한다. 많은 한국의 언론들이 말했듯 그것은 '기적' 그 자체였다. 남가주에서도 그랬다. 평생 고인을 먼 발치에서조차 본 적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 각 성당마다 쉼 없는 연도 소리가 울려퍼졌다. 한국 장례 일정에 맞춰 20여명의 사제단과 1000여명의 한인 가톨릭 신자들이 참례한 추모 미사도 거행됐다. 많은 이들이 연신 눈물을 훔치며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를 되새겼다. 성당 밖 한인 사회 곳곳에서도 그 분의 선종을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수퍼스타의 진정한 힘이 드러났다. 무엇보다 가톨릭이란 종교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다. 연일 관련 기사들이 보도되며 가톨릭 성직 제도와 전례 등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도가 확연히 높아졌다. 김수환 추기경을 본받은 장기 기증 서약자가 늘어났고 존엄사에 대한 인식도 좋아졌다. 종교의 경계를 넘어선 거룩한 화합의 장이 펼쳐졌다. 그 어느 단체가 수백.수천억을 들여서도 해내지 못한 일들이다. 그 뿐인가. 사람들 마음 속엔 돈으로 환산조차 할 수 없는 가치들이 싹텄다. 김 추기경의 선종을 통해 그 분께서 살아오신 가난한 삶 용감한 삶 겸손한 삶을 흠모하며 '나 또한 그렇게 살아보자' 결심한 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 모든 것이야말로 김수환 추기경께서 우리에게 남기신 '가장 큰 마지막 선물'이라는 한 신자 분의 말씀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누군가는 김수환 추기경이 낙타를 닮았다 했다. 행인들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짊어지고 끝없는 사막을 걷다 죽어서는 그 가죽까지 사람에게 내어주는 선한 눈의 낙타. 시대의 짐을 의연히 지고 걸어가시며 마지막 가시는 길엔 두 눈까지 내어 주신 모습이 과연 '사막의 수퍼스타'인 낙타를 많이도 닮았다. 고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이 시대의 수퍼스타. 참 아름답게 사셨고 참 곱게 가셨다. 진정으로 값진 삶을 사셨고 그만큼 값진 죽음을 보여주셨다. 마치 서른 세 해의 짧았던 삶을 가장 값지게 살고 값지게 바치셨던 나자렛 마을 출신 그 어느 분 처럼.

2009-02-20

[김수환 추기경 합동 추모미사] 1000여명 참가, 사제 20여명 공동 집전

지난 16일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을 애도하는 합동추모미사가 19일 오후 5시 성바실중앙한인천주교회에서 봉헌됐다. 같은 시간 한국에서는 김수환 추기경 장례미사가 서울 명동성당에서 치러졌다. 1000여명의 한인 가톨릭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추모미사는 LA대교구 오스카 솔리스 다민족사목담당주교를 포함 20여명의 사제들이 공동집전했다. 북미주사목사제협의회 회장 박상대 신부는 강론에서 "현재 한국에서는 김수환추기경님의 장례미사가 진행되고 있다"면서 "우리는 고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평소 김추기경님이 미주 한인 신자들에게 보여주신 뜨거운 사랑에 이 자리에 모이게 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한국 민주화의 초석을 다지고 또 약자를 대변하는데 마음과 몸을 다 바친 김 추기경님의 뜻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며 "오늘 추기경님을 보내드리지만 우리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계실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론에 이어 보편지향 기도와 성찬 전례 영성체 예식이 이어졌으며 가톨릭평신도협의회 박홍기 총회장과 미주종교평화협의회 상임대표 양현승 목사가 추도사를 낭독했다. 미사에는 한인 가톨릭 신자들 외에도 일본 가톨릭 공동체를 비롯해 개신교. 불교.원불교 성직자들도 참석해 함께 김추기경에 대한 애도의 뜻을 표했다. 한편 장례미사를 마친 김수환 추기경의 유해는 20일(한국시간) 오후 서울대교구 용인 공원묘지 내 성직자 묘역에 안장됐다. 오수연 기자

2009-02-19

'이웃과 나누는 삶을'···워싱턴 한인성당들, 김 추기경 추모미사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과 함께 워싱턴지역에선 추모와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7일 메릴랜드의 워싱턴 한인천주교회(주임신부 박용일)가 특별 추모미사와 함께 연도를 봉헌한데 이어 18일엔 버지니아의 성정바오로 천주교회(주임신부 곽호인)도 추모미사와 연도를 마련했다. 성정바오로성당은 18일 오후 8시부터 시작된 추모미사에서, 특별히 지난 1998년 워싱턴을 방문했던 김수환 추기경이 모 라디오방송국과 가졌던 인터뷰를 본당에서 방송해 김 추기경의 육성을 듣는 신자들을 숙연케 했다. 당시 김 추기경은 인터뷰에서 “내 손을 잡고 한참을 우는 자매님을 보고 정말 힘들게 이민생활을 하고 있는 동포들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됐다”면서 “어려운 시기엔 본능적으로 내것만 챙기기가 쉬운데 이기주의에 빠지지 말고 이웃을 먼저 생각하며 모든 것을 이웃과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곽호인 성정바오로성당 주임신부는 추모미사 강론을 통해 김 추기경이 한 젊은 사제와 나눴던 대화를 소개하면서, “가난이란 돈이 많던 적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지배하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며 성직자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모든 것을 하느님께 온전히 맡기고 오늘 최선을 다할 때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된다”고 강조했다. 또 “감 추기경은 혼란기때마다 국민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시고 길을 밝혀 주셨던 교회의 지도자이자 사회의 큰 어르신이었다”면서 “70년~80년대에는 진보, 좌경 따지지 않고 가난하고 고통받는 약자의 존엄성을 지켜주려 했고 또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라 믿었던 분”이라고 회상했다. 이날 추모미사에 이어 신자들은 연도(망자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는 의식)를 봉헌했고 본당 로비에 김 추기경의 영정을 모시고 신자들이 참배하도록 했다. 이에 앞서 워싱턴 한인천주교회(주임신부 박용일)는 17일 오후 7시 30분부터 김 추기경의 추모 연도를 위한 특별 미사가 열렸다. 이날 미사에서 박용일 신부는 “김 추기경의 유언에 따라 조의헌금, 분향소, 특별 추모행사 등을 일체 계획하지 않았으며 단지 추모 미사와 연도만 시행하게 됐다”며 생전 고인의 청빈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이와 함께 연도를 바친 신자들은 차례대로 김 추기경의 영정 앞에서 고인을 위한 기도를 드리는 시간을 가졌다. 한편 워싱턴 한인 천주교회는 오는 22일(주일) 10시30분 교중미사를 특별 추모미사로 대신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홍알벗 기자·신광철 MD총국장

2009-02-19

[사설] 김수환 추기경과 '타운 어른'

김수환 추기경이 지난 16일 선종했다. 찬바람 속에 명동성당 앞에는 새벽부터 조문행렬이 2km까지 이어졌다. 선종 사흘째 조문객은 24만명을 넘어섰다. 조문객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김 추기경의 선종 앞에 한 사회를 구별짓는 벽과 갈등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대와 지역 이념 종교를 초월한 추모 인파는 사실상 '국민장'이라 할 수 있다. 김 추기경의 조문 행렬에서 우리는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한인 커뮤니티에 이런 어른이 있는가. 벽을 뛰어넘어 한인사회를 하나로 묶고 소통하게 하는 어른이 있는가. 한인 커뮤니티에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많다.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도 많다. 앞으로 더 많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라 부르고 따를 만한 지도자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어른의 덕목은 높은 도덕성과 실천이다. 김 추기경은 87년의 생애 동안 자신의 소유라고 부를 특별한 것을 남기지 않았다. 43년 된 낡은 제구가 이를 상징한다. 김 추기경은 시대와 호흡했다. 10월 유신반대와 광주민주화운동 6.10항쟁 등 현대사의 고비마다 거침없는 비판의 목소리로 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한인 커뮤니티에도 김 추기경에 대한 추모심이 높다. 아름다운 일이다. 이와 동시에 우리는 김 추기경의 선종이 한인 커뮤니티에 던진 화두가 무엇일까 생각한다. 마지막 순간 김 추기경은 각막 기증과 "서로 사랑하며 사십시오"란 말을 남겼다. 어려운 시기에 스스로를 다잡고 가족과 이웃을 보듬을 방법은 나눔과 사랑이라는 메시지일 것이다. 또 하나의 화두는 '어른을 가져라'이다. 김 추기경의 일생 자체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한인사회를 정신적으로 이끌면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어른. 한인 커뮤니티의 숙제다.

2009-02-18

김수환 추기경 선종…남가주서도 추모 행렬

지난 16일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87)은 남가주와도 인연이 깊다. 1980년대 성삼한인천주교회에 여러차례 비공식 방문했고 2004년에는 웨스트 코비나 성크리스토퍼한인천주교회와 성그레고리한인천주교회를 방문해 신자들과 격의없는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김 추기경의 선종을 애도하는 LA의 분위기를 알아본다. 미주 방문 추억 되새겨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애도하는 남가주 한인 가톨릭계의 가장 큰 특징은 차분함이다. 성당마다 평일인 탓에 빈소를 찾는 한인들이 많지 않았지만 주말이 되면 크게 늘 것으로 보인다. 성당별로 열리고 있는 연도에 참여한 한 신자는 "슬픔도 크지만 김 추기경이 일생을 통해 보여준 모습에 감사하다"면서 "김 추기경이 가톨릭 지도자로 만이 아닌 사회의 지도자로서 보여준 행동에 가톨릭 신자로 뿌듯하다"고 말했다. 성마리아엘리자벳성당측은 "선종 소식을 접한 17일 오후 80여명의 한인신자들이 찾아와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추모를 드리고 갔다"면서 "합동미사에 앞서 매일 연도를 드리고 있다"고 밝혔다. 성삼한인천주교회 클라라 김 사무장은 "많은 신자들이 김추기경이 미주에 방문했던 때의 추억을 되새기며 추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범종교단체도 애도 ○…범종교단체인 미주종교평화협의회 대표단도 19일 성바실중앙한인천주교회에서 열리는 합동 추모미사에 참석해 김 추기경의 뜻을 기린다. 이 자리에는 상임대표인 양현승 목사와 공동대표인 반야사의 현철 스님이 참석할 예정이다. 원불교에서는 한국에 머물고 있는 최정안 교무를 대신해 대표성을 가진 인사가 참석할 예정이다. 양 목사는 "김 추기경님이 평생 살았던 모습을 우리들이 계승하고 실천할 수 있는 다짐의 시간을 갖고자 한다"고 참석 취지를 밝혔다. 본당별로 위령기도 올려 ○…본당별로 올리고 있는 위령기도는 한국 가톨릭 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연도는 망자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는 기도로 흔히 연도라고도 한다. 연도는 선창과 후창으로 나누어 40여분 정도 진행되는데 한국 전통 장례식에서 곡을 하는 것을 가미했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는 없는 독특한 형식을 띈다. 오수연 기자

2009-02-17

[김 추기경 추모글] '바보' 영전에 바칩니다

월요일 출근 중 방송을 통해 추기경님의 비보를 듣고 크나 큰 슬픔에 휩싸였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저희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신 '가장 큰 바보' 예수와 영원히 살러 떠나신 '바보' 추기경님을 회상해 보았습니다. 34년전 이 맘때쯤이었지요. 추기경님이 이사장으로 계셨던 동성고등학교에 배정받아 간 입학식날 막 교문을 들어서니 한 운전자가 차 좀 밀어 달라서 생각없이 그냥 밀었지요. 겉은 멀쩡한 외제 차인데 고장이 났던 겁니다. 알고보니 그 차는 추기경님의 차였습니다. 추기경님은 입학식 미사 때 외제차를 타고 온 것이 미안했는지 변명을 하셨지요. "어떤 신자가 중고차를 줘서 몇 년 타는데 가다가 자꾸 시동이 꺼져…. 운전기사가 새 차로 바꿔달라 하지만 멀쩡한데 왜 바꿔…." 고급차를 타야 권위도 느껴지고 한국 천주교회의 큰 어른으로서 체면도 서실텐데 추기경님은 낡은 차에 만족해 하셨습니다. 입학식 미사 중 비신자의 손을 들게 해서 세례 받아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복음을 선포하셨으면 전교생이 신자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그래도 저는 추기경님을 뵙고 입학식날 개종을 하게 됐습니다. '저 분이 이끄시는 종교라면 믿어도 되겠다'하는 생각이었죠. 남가주 지역 행사에 참석하실 때 마다 연로한 분을 편히 모시고 싶은 저희들 마음을 마다하고 일반석을 원하시던 추기경님. 동창회서 선배이면서 전 이사장이신 추기경님을 위해 저녁 자리를 마련했을 때 호텔에 예약한 것을 알고 '가장 싼 식당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오시겠다'는 말로 주최측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하셨던 추기경님. 76년 3.1절 행사 때인가요. 함세웅 신부님 문익환 목사님 등 여러 성직자들이 명동 대성당에서 시국 선언문을 낭독하는 모습을 병환중인 아버님을 위해 기도 드리러 성당에 들렀다가 생생히 봤지요. 그런데 다음날 신문에 국가 전복기도 사건으로 대서특필돼 있었습니다. 전혀 그런 얘기가 없었는데도 말입니다. 며칠 뒤 전국의 거의 모든 사제가 명동 대성당을 가득 채운 가운데 추기경님께서 주례하시던 미사에서 피를 토하시는 것 같이 전해주시던 강론 말씀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교회는 교회 본연의 임무만 해야 한다 하시지 교회가 세상에 속해서도 안되지만 교회는 세상 안에서 세상을 위해 있어야 한다며 무거운 십자가를 스스로 짊어 진 추기경님…. 세상 물정도 모르는 진짜 바보이셨습니다. 버려진 고아나 노인들 철거민 등 소외된 이들과 친구하려 애쓰신 추기경님. 그런 궂은 일은 아래 신부님들 시키시고 고관 대작을 만날 수 있는 자리에 계셨지만 전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존경하는 김수환 추기경님. 저희들은 세상에서 다시 뵐 수 없는 추기경님을 생각하며 깊은 슬픔에 있지만 유리관에 누워 계신 추기경님의 모습을 보며 손에 꼭 잡으신 묵주를 저희도 항상 잡고 기도하겠습니다. 굳게 다문 추기경님의 입같이 저희도 침묵하며 형제의 허물을 보는 눈을 꼭 감아 조그만 '바보'라도 되어 천국에서 추기경님 꼭 뵐 수 있도록 열심히 살겠습니다. 주님. 추기경님이 가장 낮은 사제로서 저희와 함께 살아 올 수 있도록 허락하셨음을 감사드리며 당신의 사랑을 실천하려 애쓰신 추기경님께 천국의 영복을 허락해 주소서.

2009-02-17

[윌셔 플레이스] 추기경의 카리스마

종교가 세속의 권력과 맞붙으면 어찌 될까. 둘 중의 하나다. 교회가 권력의 칼을 빼앗아 민중에게 되돌려 주거나 아니면 시퍼렇게 날이 선 칼끝을 무디게 만들어 교화시키는 것이다. 동서고금의 예를 봐도 권력에 빌붙을 망정 종교가 지는 법은 거의 없다. 전자의 대표적인 경우가 필리핀이다. 1980년대 중반 마르코스의 부정부패와 독재가 한창이었던 시절 가톨릭 교회가 반정부 투쟁에 앞장 섰다. 한껏 고무된 필리핀 국민들은 맨손으로 권력에 항거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군부의 무자비한 탄압과 살육에 이른바 '피플 파워'(People Power)는 사그라질 위기에 처한 것. 교회도 마찬가지였다. 신부들이 차례로 살해당하자 목숨 보전에 급급했다. 주교단 회의를 열어 대책을 숙의했으나 모두 총칼의 위협에 몸을 사릴 뿐이었다. 당시 교회의 지도자는 하이메 신 추기경. 처음엔 그 자신도 어쩔줄 몰라 당황했다. 그럴 즈음 전보 한통이 그의 앞으로 배달됐다. "나는 여러분들과 함께 하겠다." 내용은 딱 한 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필리핀 교회에 보낸 메시지였다. 용기를 얻은 신 추기경은 거리로 뛰쳐나가 시위대의 선봉에 섰다. '피플 파워'가 다시 부활하는 순간이었다. 그의 강한 카리스마가 끝내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것. 1987년 '필리핀의 봄'은 이처럼 추기경의 리더십이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여 이뤄낸 혁명이었다. 한국의 민주화 20년 역사에도 고비마다 추기경이 등장한다. 엊그제 87세를 일기로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 그의 이름이 한국 밖에 처음으로 알려진 건 지학순 주교 투옥 때문이다. 국내 언론엔 재갈이 굳게 물려있어 추기경은 외신기자회견을 통해 정부의 조치가 부당함을 조목조목 따졌다. 미국은 동맹관계에 금이 갈 것을 우려했는지 유감 표명으로 얼버무리려 했다. 추기경의 회견에 귀를 기울인 것은 뜻밖에도 유럽 쪽이었다. 서독정부는 당장 석방하지 않으면 경제협력(원조)을 중단하고 국교도 단절하겠다는 초강수의 카드를 뽑아들었다. 프랑스와 이태리 스페인 영국 심지어 북구의 개신교 국가들까지 서독의 조치에 동조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굴복한 박정희 정권은 지 주교를 풀어주게 된다. "주교가 그렇게 높은 지위냐"는 대통령의 질문에 보좌관의 답변은 기자들 사이에 화제가 됐다. "추기경은 훨씬 더 높습니다." 이때부터 박정희는 추기경을 두려워하면서도 한편으론 존경했다고 한다. 권력의 매서운 칼끝을 무디게 만들었다고 할까. 이젠 '역사'가 된 동아시아 민주화의 두 거목 하이메 신(2005년 타계)과 김수환. 신 추기경이 정권에 맞서 몸으로 일군 필리핀의 민주화는 이후 집권층의 무능과 사회혼란이 겹쳐 나라는 후진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를 실패한 민주화라고 해야 할지. 김 추기경은 그러나 하이메 신과는 사뭇 다른 길을 걸었다. 투쟁의 전면에 나서거나 부추기지는 않았지만 필요할 때마다 준엄한 질책과 비판을 쏟아냈다. 암울한 시대에 빛과 소금 그리고 예언자적 사명에 충실해 종교인의 본분을 결코 잃지 않았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용서하세요." 그가 마지막 남겼다는 메시지엔 부당한 권력까지도 용서하고 품어 안으려 했던 추기경의 '바보'같은 삶이 묻어난다. 자신의 아호 '옹기'처럼 세상의 구정물도 담아내려 했던 것이다. 어쩌면 그 덕분에 한국은 민주화와 경제강국이라는 두마리 토끼몰이를 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추기경의 '옹기'는 결코 깨지지 않는 시대의 양심이었다.

2009-02-17

김수환 추기경, 하느님 품에 안기다

한국 가톨릭계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온 김수환(스테파노.사진) 추기경이 16일 오후 6시12분(한국시간)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87세 일기로 선종(서거를 뜻하는 천주교 용어)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은 "우리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김수환 추기경께서 우리 곁을 떠나 하느님 품안에서 선종했다"고 공식 발표하면서 "추기경께서는 노환으로 고통받으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미소와 인간미를 잃지 않으셨고 인간에 대한 사랑과 그리스도의 평화와 화해 메시지를 전했다"며 애도했다. 서울대교구는 "김 추기경의 사인은 폐렴으로 인한 급성 호흡부전"이라고 공식 발표했으며 "정 추기경을 위원장으로 하는 장례위원회를 구성해 20일 오전 10시 서울대교구장으로 장례미사를 치르고 장지는 경기도 용인 천주교 성직자 묘역에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추기경의 선종에 한국사회는 물론 미주사회도 큰 슬픔에 빠졌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 한국의 정치.종교.사회.문화 등 각계 인사들은 일제히 깊은 애도를 표하며 김 추기경의 선종을 안타까워 했고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명동성당에는 시민들의 추모행렬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미주 한인사회 역시 우리시대의 큰 어른으로 한평생 사랑을 실천하다 선종하신 김 추기경의 업적을 기리며 추모했다. 특히 미주 가톨릭계는 성당별로 연도를 바치고 19일 추모미사를 봉헌하는 한편 성마리아 성당은 작은 빈소를 마련해 추모객을 맞고 있다. 미주가톨릭방송도 특별 추모방송을 JBC(AM 1230)를 통해 내보낼 예정이다. 이경민.오수연 기자

2009-02-16

[김수환 추기경 선종] 비신자들 ‘손 한번만…’에 흔쾌히 덥썩

16일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은 남가주 한인 가톨릭 신자들과도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교계의 가장 큰 어른임에도 언제나 낮고 겸손한 자세로 신자들을 만났던 김수환 추기경은 여러 차례 남가주 신자들과 만남을 가지며 그들의 신앙과 생활을 두루 격려한 바 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 마지막으로 남가주를 방문했던 것은 지난 2004년. 당시 서울대교구가 처음으로 남가주에 한인 사목 사제를 파견했던 것을 기념한 격려 방문이었다. 당시 김 추기경은 서울대교구 사제가 사목하고 있던 웨스트 코비나 성크리스토퍼한인천주교회를 방문 신자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진 바 있다. 또한 LA 성그레고리한인천주교회도 방문해 미사를 집전하고 청년 신자들과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그레고리 성당 신자 김민정씨는 "그 때 추기경님이 오신다는 소식에 멀리 타 본당에서까지 많은 신자들이 몰려왔었다"며 "가까이서 청년들을 위해 좋은 말씀을 해 주시던 추기경 모습에 크게 감동했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은 미주가톨릭방송의 최고 후원자이기도 했다. 10여년 전부터 방송 선교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미주가톨릭방송의 운영과 발전에 큰 관심을 기울여 왔다. 미주가톨릭방송이 본인의 이름을 딴 '김수환추기경배 골프대회'를 개최해 운영비를 마련할 수 있도록 허락하기도 했다. 가톨릭방송 헨리 경PD는 "고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미주가톨릭방송이 한인 사회에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하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큰 도움을 주셨다"며 "이름을 '팔아서'라도 도움을 주겠다고 하셨던 추기경님의 뜻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김수환 추기경은 한인 교계의 최대 행사 중 하나인 남가주성령쇄신대회에 2차례 참여했을 뿐 아니라 매년 축사를 보내 한인 신자들이 신앙을 쇄신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하는데 큰 버팀목이 됐다. 남가주성령쇄신봉사회 고재원 회장은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편찮아 병원에 계실 때도 꼭 한인 신자들을 위해 축사를 보내주셨던 분"이라며 "LA를 방문하실 때마다 아무리 좋은 호텔 아무리 좋은 식당도 절대 마다하시고 사제관이나 수녀원에서 주무시며 허름한 데서 식사하셨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김수환 추기경은 동성고등학교 이사장 자격으로 남가주동성고등학교 동문회 모임에 참석한 바도 있다. 당시 모임에 함께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한인타운 한 식당에 갔는데 주인 부부가 눈이 휘둥그레져 추기경님을 대접하려 안절부절했던 기억이 난다"며 "신자도 아니었던 주인 부부가 'TV에서만 뵙던 추기경님 손 잡아보는게 소원'이라고 하자 빙그레 웃으시며 함께 기념촬영을 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라고 전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은 80년대 초중반 글렌데일 성삼한인천주교회에도 두 세차례 비공식 방문을 했던 바 있다. 성삼한인천주교회 초대 주임이었던 고 현기호 신부가 김 추기경이 60년대 중반 주교품에 오른 이후 처음으로 사제 서품을 줬던 마산교구 사제였다는 각별한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경민 기자 rachel@koreadaily.com

2009-02-16

[김수환 추기경 선종] '종교를 뛰어넘은 큰 지도자를 잃었다'

카톨릭계…혼란했던 시기 빛과 소금의 역할 다해 "주님의 종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한국 가톨릭 교계의 큰 어른이었던 고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의 선종 소식에 남가주 한인 교계에도 애도의 물결이 일고 있다. 16일 오전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소식을 들은 한인 가톨릭 성직.수도자들과 신자들은 공동체별로 연도를 바치며 김 추기경 영혼의 안식을 빌었다. 또 북미주한인사목사제협의회의 권고에 따라 오는 18일 각 본당별로 연도를 바치는 한편 한국 시간으로 20일 오전 명동성당에서 열리는 장례 미사 일정에 맞춰 19일 저녁 본당별 추모 미사를 봉헌하기로 결정했다. 남가주사제협의회 회장인 전달수 신부가 주임으로 있는 성마리아한인천주교회에서는 작은 빈소도 마련해 누구나 찾아와 김수환 추기경을 추모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JBC를 통해 전파를 타고 있는 미주가톨릭방송(월~금요일 오전 5시30분 일요일 오전 7시)에서는 오늘(17일)부터 2주간 김수환 추기경을 추모하는 특별 방송을 기획했다. 김수환 추기경의 어렸을 때 부터의 삶과 사제로서의 길을 두루 조명할 예정이다. 고 김수환 추기경을 추억하며 추모의 메시지를 전하는 교계의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북미주한인사목사제협의회 회장 박상대 신부는 "그토록 혼란했던 시국에 맞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시며 무거운 짐을 많이 지셨던 분이 바로 김수환 추기경님"이라며 "이제 그 멍에를 내려놓고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길 빌며 앞으로는 우리가 그 짐을 지고 나갈 것을 다짐한다"고 밝혔다. 남가주사제협의회 회장 전달수 신부는 "정의구현에 앞장 서셨던 정말 훌륭한 어른이자 지도자를 잃게 돼 마음이 너무나 아프다"라고 애도를 표했다. 수도자들 역시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남가주 가톨릭성서센터 손 플로리아나 수녀는 "선종 소식을 듣자마자 다른 수녀님들과 함께 연도를 바쳤다"며 "편찮으시다는 소식에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가시고 나니 마음 한 구석이 뻥 뚫린 느낌"이라고 아쉬워했다. 손 수녀는 또한 "가장 어려울 때 교회의 목소리를 대변하셨던 추기경님의 뜻을 잊지 않고 이어나가도록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벨플라워에 위치한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최 아녜스 수녀 역시 "젊은 나이에 교회의 지도자가 되셨음에도 의연하게 혼란의 시기를 대처해오신 추기경님은 가톨릭을 넘어 모든 한국인들의 빛이셨다"며 "수도자들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던 추기경님의 영혼을 위해 마음을 모아 기도한다"고 전했다. 이경민 기자 rachel@koreadaily.com 종교계…중도적 입장에서 모든 사람들을 포용 한국 가톨릭계의 정신적 지주인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소식을 전해 들은 미주 한인 종교계에도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다. 16일 한인 개신교계와 불교계는 “김 추기경은 종교의 벽을 넘어 화합을 이끌면서 한국사회에 든든한 기둥 역할을 해 오신 분”이라며 애도를 표했다. 남가주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 한종수 목사는 “먼저 한국 종교계의 큰 별이 선종하신 것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나라의 어른으로 한국사회가 어려울 때 나라의 지표가 되어주셨으며, 중도적인 입장에서 모든 사람들을 포용하셨던 김 추기경의 노고에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나성영락교회 원로 박희민 목사 역시 “40여 년 전 종교화합을 위한 자리에서의 봤던 김 추기경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며 “김 추기경은 가톨릭계의 리더로서만이 아닌 종교계 전체의 지도자이기도 했다. 그런 분이 떠난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금할길 없다”고 전했다. 법왕사 현일 스님 역시 슬픔을 함께 했다. 현일 스님은 “김수환 추기경은 불교계는 범 종교적으로도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 받는 분이었다”며 “김 추기경의 ‘모든 것은 내 탓’이라는 가르침은 오랜 종교계의 갈등을 화합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좀 더 오래 우리 곁에 계시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울 뿐”이라고 슬픔을 표했다. 범종교단체인 미주종교평화협의회 상임대표 양현승 목사는 “주님의 발자취를 이 세상에 계시면서 쫓아갔던 추기경의 선종소식을 듣고 오늘 그분을 위해 새벽기도를 드렸다”면서 “김 추기경은 이제 세상에 안계시지만 지금까지 그 분이 하던 많은 일들을 계승하라는 뜻으로 알고 종교를 넘어 우리 모두가 그 뜻을 모으고 실천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수연 기자 한인사회…사랑을 몸소 실천하신 분…안타깝다 미주 한인사회의 각계 인사들도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애도와 슬픔에 빠졌다. 특히 남가주 한인 커뮤니티에는 여러번 방문했던 김추기경이라서 더욱 슬픔이 더했다. 김재수 LA총영사는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고비때마다 큰 역할하신 김 추기경은 특히 사랑과 인권 문제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하셨다”면서 “국가적으로는 물론 한민족 전체에 큰 손실”이라고 말했다. 김 총영사는 “종교와 무관하게 평소에도 무척 존경한 인물이어서 막상 선종하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스칼렛 엄 LA한인회장도 “뜻밖의 소식에 아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눈물도 많이 난다”면서 “멋지고 의연하셨던 모습이 특히 기억이 남는다”고 말했다. 또 강태흥 재미한인자원봉사자회장은 “암울했던 시대 한국에서 민주화의 최고 선봉이자 정신적 지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 버팀목이었다”면서 “수많은 민주화 인사들이 용기를 잃지 않았고 절대 독재 권력에 물러서지 않았던 점과 약자들의 편에서 굴하지 않으셨던 것들이 기억에 남는다”고 애도했다. 이병도 충청향우회장은 “1981년 잠실성당에서 직접 견진성사를 받았다”면서 “당시 신자들의 요구로 노래를 하셨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면서 “특히 희망을 얘기하고 아주 가까이서 자상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셨던 모습이 너무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대부분 한인들도 김 추기경의 모범적인 사랑 실천을 높이 기리며 큰 별이 졌음을 안타까워했다. 진 송(증권업)씨는 “예전에 안구 기증을 예약해서 수많은 신자들의 장기기증 대열에 동참하게 했다”며 “김추기경은 말뿐이 아닌 몸소 실천을 통해 사랑을 전파하신 분”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김 추기경이 여러 번 남가주를 방문해 많은 메시지를 전하는 등 우리와 매우 가까이 계셨던 것으로 느끼는 한인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장병희 기자

2009-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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